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숙시진췌 熟視殄瘁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30. 14:2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숙시진췌 熟視殄瘁

익을 숙볼 시다할 진병들 췌

 

아프고 시달리는 것을 자세히 눈여겨보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의 시문집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 권삼(卷三)에 간원이 시사를 진언한 상소 병인년(명종21 1566)(諫院陳時事疏 丙寅)에서 발췌하다

 

殿下深拱九重 泛聞民瘼而已 전하심공구중 범문민막이이

豈能實知斯民之倒懸 기능실지사민지도현

一至於此哉 據今民力 일지어차재 거금민력

則雖使只供常貢正賦 즉수사지공상공정부

而亦不可友保 이역불가우보

終必至於困極作亂而已 종필지어곤극작란이이

赤眉黃巾 豈是天性好逆者哉 적미황건 기시천성호역자재

此皆齊民之不堪塗炭者耳 차개제민지불감도탄자이

言之至此 良可痛哭 언지지차 량가통곡

及今不救 後悔何益 급금불구 후회하익

當今有司 只恤經用 당금유사 지휼경용

不顧民力 雖有陳弊之疏 불고민력 수유진폐지소

例以防啓爲常規 례이방계위상규

而大臣 又不聞長慮深憂 必欲活民 이대신 우불문장려심우 필욕활민

而熟視殄瘁 이숙시진췌

置之無可奈何之域 치지무가내하지역

莫敢出一策焉 막감출일책언

但曰 貢進不可闕而已 단왈 공진불가궐이이

 

전하께서는 깊은 구중궁궐에 계시면서 백성들의 아픔을 대충 들으셨으니

어찌 백성의 손발을 묶어 거꾸로 매단 듯 한 고통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사실대로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백성의 힘으로 의거한다면

비록 일반적으로 바치는 공물과 부역을 바르게 유지한다 해도

그러하나 또한 보전하기가 어려우니

결국에는 반드시 곤란이 극도에 다 달아 난리를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적미황건족 농민의 반란이 어찌 천성이 반역을 좋아하는 자들이겠습니까

이들도 모두 다 백성으로서 매우 고통스런 지경에 빠져 견뎌 내지 못한 자들입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정말로 가히 통곡할 일입니다

지금 바로 구제하지 않으면 뒷날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당장 오늘날 일을 맡아보는 유사들은 다만 쓰일 경비만 걱정하고

백성의 힘은 돌아보지 않으니 비록 폐단을 펼쳐 이르는 상소가 있더라도

의례히 임금에게 알리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써 일반적 규정으로 하고

대신도 또 길게 생각하고 깊이 우려하여 반드시 백성을 살리려고 하는 것은 듣지 아니하고

아프고 시달리는 것을 자세히 눈여겨보면서도

가히 어떻게 수 없는 처지에 내버려 두고

감히 계책도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는

다만 말하기를 공물을 바치는 일은 빠뜨려서는 아니 된다고 할 뿐입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이 병인 명종21 (1566)년 간원 때 시사를 진언한 상소문의 일부이다

율곡 이이선생은 강원도 강릉 출생 본관은 덕수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외 석담(石潭) 우재(愚齋)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신씨(師任堂申氏)이시며 아명을 현룡(見龍)이라 했는데 어머니 사임당이 그를 낳던 날 흑룡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와 서리는 꿈을 꾸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 산실(産室)은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되고 있으며 선생은 8세 때에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 났으며 명종 3(1548)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으며 15511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례하고 3년간 시묘(侍墓)하였으며 그 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155520세 때 하산해 다시 유학에 전심하였으며 1557년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1558년 봄 예안 도산으로 이황을 방문했고 그 해 겨울의 별시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하였으며 전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졌으며 1564년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예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선조 1(1568)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이 해에 19세 때부터 교분을 맺은 성혼과 지선여중및 안자격치성정지설 등 주자학의 근본문제들을 논하였으며 1569년 임금에게 동호문답을 지어 올리고 1572년 파주 율곡리에서 성혼과 이기 사단칠정 인심도심등을 논하였으며 1574년 우부승지에 임명되고 재해로 인해 만언봉사를 올렸으며 1575년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를 편찬하고 1577년 아동교육서인 격몽요결 1580년 기자의 행적을 정리한 기자실기를 편찬하였으며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고 어명으로 인심도심설을 지어 올리고 이 해에 김시습전을 쓰고 학교모범을 지었으며 1583년 시무육조를 올려 외적의 침입을 대비해 십만양병을 주청하였고 1584년 서울대사동에서 영면하여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었으며 문묘에 종향되고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풍덕의 구암서원 황주의 백록동서원등 20여개 서원에 배향되고 시호는 문성(文成)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아프고 시달리는 것을 자세히 눈여겨보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숙시진췌(熟視殄瘁)의 발췌문을 읽으면서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인 백성 국민의 아픔을 눈여겨 살펴보되 그 방책을 제대로 내어야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민란이 일어 날 수 있다는 주지의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위정자와 위정의 길로 가려는 자들은 반드시 늘 명심을 해야 할 것 같다 아픈 고통을 눈여겨보는 것 숙시진췌를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218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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