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점규우의 漸逵羽儀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1. 15:20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점규우의 漸逵羽儀

점점 점한길 규깃 우거동 의

 

점점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선망의 대상이 되다

()는 대도시의 9갈래로 갈라진 큰 길 즉 큰 도시 높은 직책 출세를 이야기하며 우의(羽儀)는 봉황의 날개라는 뜻으로 타의 모범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선생의 시문집인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 권륙십(卷六十)에 이조참판정공묘갈명 병서(吏曹參判鄭公墓碣銘 幷序)에서 발췌하다

 

維我穆陵之世 有名大夫鄭公諱協 유아목릉지세 유명대부정공휘협

令聞廣譽 人至今說不衰 령문광예 인지금설불쇠

然惇史無徵 官迹寢微 연돈사무징 관적침미

於是公曾孫縣監公所以鐫刻示後 어시공증손현감공소이전각시후

只攟拾諸家瑣錄以爲信 지군습제가쇄록이위신

亦可以著其槩矣 역가이저기개의 ...증략...

銘曰 명왈

國有長德 乃心寬仁 국유장덕 내심관인

敦積厚發 克裕厥身 돈적후발 극유궐신

載敭王庭 優爲藎臣 재양왕정 우위신신

漸逵羽儀 想望在民 점규우의 상망재민

出試郡邑 去思不泯 출시군읍 거사불민

入參大政 甄別有倫 입참대정 견별유륜

愷悌勞矣 於斯其人 개제로의 어사기인

邦之臲卼 見幾者神 방지얼올 견기자신

我馬揚鑣 歸去吾田 아마양표 귀거오전

吾沒吾寧 不愧于天 오몰오녕 불괴우천

有子誨爾 在逐伊榮 유자회이 재축이영

無以一時 百世之名 무이일시 백세지명

 

우리 조선 선조대왕 시대 때 이름난 대부 정협 공이 있었는데

훌륭한 명성과 소문이 자자하여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하나 선생의 돈후한 역사가 증험 될 만한 기록이 없고 관직 또한 잘 드러나 있지 않아서

이에 공의 증손 현감공이 돌에 새겨 후세에 보여주려고

여러 집안의 있는 기록에서 믿을 만한 자질구레한 자료를 수집하여 놓아

그것으로 또한 가히 그 대략이나마 쓸 수 있었다 ...중략,,,

명은 다음과 같다

나라 안에 덕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 그 마음이 너그럽고 어질며

도탑게 쌓은 덕이 후하게 드러나니 그 몸이 능히 여유롭네

왕의 조정에 이름실어 날리니 그 신하로서 다함이 뛰어나고

점점높이 올라가니 모범되며 만나보길 희망하는 백성있네

나아가서 고을고을 다스리니 떠나간 뒤 백성들이 잊지못해

들어와선 큰 정치에 참여하니 질서 있고 뚜렷하게 구별하네

즐거웁게 공경하고 수고하니 이가 바로 그 사람이로다

나라가 위태위태 어려울 때 귀신처럼 기미를 알아냈고

말에다 재갈 물려 나아가서 고향에 논밭으로 돌아가네

죽어서도 저승길이 편해지고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으리라

자식에게 가르침이 있었는데 저 영화를 좇아가고 있더라도

한때로서 부귀영화 좇지 말고 백세 대대 새길 이름 드높여라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선생이 쓴 이조참판정공묘갈명 병서(吏曹參判鄭公墓碣銘 幷序)의 일부분이다

 

비명에 이조참판 정공은 한천 정협(寒泉 鄭協15611611)선생으로 선생은 비문에 의하면 명종 16년 신유년(1561) 36일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이미 문장 뛰어나서 주위에서 세상을 빛낼 아이라고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을유 선조18(1585)에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연이어 절일시에 또 장원으로 급제하여 무자년(1588) 문과에 직부(直赴)되고 예문관 한림을 거쳐 홍문관 정자에 제수되고 기축옥사 때 부친 의정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여 년 동안 하위 관직에 머물다가 기해년(1599)에 임금이 무고임을 깨닫고 선생을 의정부 검상에 제수하고 홍문관 수찬을 거쳐 의정부 사인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아장 동부승지로 승진하고 을사 선조38(1605)에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고 이듬해에 그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로 승품하고 성균관과 양사 옥당에서 장관을 지내고 양관에서 제학 예조와 이조에서 참판을 지내 영화가 극도에 달하였으며 신해 광해군3(1611) 겨울 1220일에 과천의 시골집에서 별세하였으며

비문 안에 유몽인선생의 어우야담에 또 이르기를 왜적이 발밑에까지 쳐들어오자 선생이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작은 배에 서로 먼저 건너려고 여러 사람이 다투었을 때 공이 모두 다 건너가지 못하리라 생각하고는 죽은 아우의 처자들을 먼저 건너게 하고 난 다음에 자신의 가족들을 뒤따라 건너게 하였지만 다행히 죽음은 면하여 사람들이 공을 등백도(鄧伯道)에 에 비유하여 칭송했다하며 또 죽천 이덕형(竹泉 李德泂)선생의 죽창한화에 이르기를 선생은 성품이 어질며 도량이 넓고 급하게 말하거나 서두르지 않았으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언제나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 어려움에 처한 이를 보면 구제하여 선생은 타고난 천성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으로서 억지로 한 일이 아니며 선생이 어린 시절 길가에서 추위에 떨며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입은 옷을 벗어 주기도 하였다 한다

 

점점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선망의 대상이 되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점규우의(漸逵羽儀)의 발췌문 비명의 주인공 한천 정협선생의 돈사(惇史)행장은 비록 세상에 크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타의 모범 의표가 되는 삶을 영위하심을 높이 받들고 공경히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220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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