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최통무련 摧慟撫憐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29. 11:01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최통무련 摧慟撫憐

꺽을 최서럽게 울 통어루만질 무불쌍히 여길 련

 

매우 서러운 슬픔 속에서 가련하게 여기며 보살피다 즉 자기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남과 가족에게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다 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선생의 시문집인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 권십팔(卷十八)에 이치화에게 답하는 편지(答李致和) 계유 영조29(1753)에서 발췌하다

 

信息隔歲間濶 雖有便風緘款 신식격세간활 수유편풍함관

往往去滯來阻 多患不達 왕왕거체래조 다환불달

生老各天 餘日儘少 생로각천 여일진소

音問亦從而罕稀 寧不悵然 음문역종이한희 녕불창연

瀷蟄在丘樊 素不喜遊從 익칩재구번 소불희유종

一自仰託心交 千里而几席矣 일자앙탁심교 천리이궤석의

書牘盈箱 眷厚溢紙 서독영상 권후일지

豈非生世之幸願耶 기비생세지행원야

京居安生不知誰某 旣聞勤札囑付 경거안생불지수모 기문근찰촉부

雖不承猶承也 今又敬拜下 수불승유승야 금우경배하

憑審令德頤壽動靜俱宜 雖以慰釋 빙심령덕이수동정구의 수이위석

亦審喪威荐臻 摧慟撫憐 역심상위천진 최통무련

更爲之驚歎未已 갱위지경탄미이

淸臺丈七旬麻疹 前此未聞 청대장칠순마진 전차미문

然能葆攝回泰 연능보섭회태

此不獨內養多力 차불독내양다력

亦必明神錫祉耳 역필명신석지이

 

소식이 해를 넘긴지가 오래되었으니 비록 인편에 정성스런 편지가 있기는 하지만

왕왕 가고 오는 길이 험하고 막히기에 전달되지 못할까 근심이 많습니다

하늘아래 서로 다른 곳에서 살면서 늙어 가는데 여생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

안부를 묻는 편지마저 또한 보내는 것이 드무니 영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강가 언덕 움막에 은거하고 있으면서 평소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한번 우러러 굳게 마음으로 맺은 이후부터 천 리 밖일 진정 무릇 마주 한 듯합니다

보내준 서찰이 상자에 가득하고 그리운 두터운 정이 종이에 넘치시니

어찌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행히 바라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울에 사는 안생이 누구인지는 모르오나 정성스런 편지를 부쳤다는 소식을 이미 들고

비록 받지는 못하였지만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 또 존경하는 편지를 받고서

아름다운 덕과 100세의 건강과 생활이 모두 평안함을 알았으니 비록 위로와 마음이 놓이지만

또한 아픈 상사를 거듭 당하시고도 슬픔 속에서 가련하게 여기며 보살피고 있으심을 알았으니

또 다시 놀랍고 안타까움이 끝이 없습니다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어른은 칠순에 홍역을 앓았다는데 전에 이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 건강을 조리하여 건강을 회복하셨다고 하시니

이것은 많은 힘을 기우려 봉양을 잘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반드시 분명하게 하나님(조상신)이 내린 복일 것입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선생이 이치화에게 답하는 편지 글이다 성호선생은 이치화선생과 여러 편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이치화선생은 보통의 인물은 아니셨던 같으나 이치화선생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렵고 한국고전번역원 자료에 의하면 치화는 자이고 본명은 이국춘(李國春 1692~1754)으로 전주(全州)이씨이고 호는 간서(澗西)이다 라고 전주이씨효녕대군파세보(全州李氏孝寧大君派世譜)에 근거하였다는 기술이 필자가 찾은 전부라서 안타깝다

 

또 편지 내용 중에 청대 어른은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1679~1759)선생을 일컫는 것 같다 청대선생은 본관이 안동 자는 태중(台仲) 상주의 근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권심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로 부사 이달의(李達意)의 딸이시고 학문을 일찍 깨우쳐 20세에 옛 사람들의 독서하는 법과 수신하는 방법을 모아 학지록을 저술하였으며 숙종 36(171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부정자가 되었으며 1715년 저작 전적 직강 등을 역임하고 1720년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경종 2(1722) 병조좌랑을 지내고 영조 3(1727)에는 만경현령이 되어 이듬 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사전에 탐지해 영문에 보고하고 난을 토벌해 공을 세웠으며 1731년 영암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내고 1733년 양산군수 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같은 해 퇴계언행록을 교열해 간행하고 이듬 해 상소해 민폐 근절책과 관기숙정 방안을 건의하였으며 홍문관의 계청에 의해 경연에 참석해 소신을 진술했으며 그 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을 창립해 학문을 진흥시켰으며 공씨에게 군역을 면제하는 등의 선치를 하였으며 1741년 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45년 봉상시정 이듬 해 사헌부헌납 사간원사성 사헌부집의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748년 우부승지로 물러났으며 뒤에 대사간 판결사 홍문관부제학 한성좌윤 지중추부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이황을 사숙해 사칠설을 지어 이와 기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이며 기는 기질의 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저서로는 청대집 18권 초학지남 관서근사록집해 소대비고 가범 역대사초상목과 일기 30여 권이 있으며 사후 죽림정사 근암서원에 향사되었으며 시호는 희정(僖靖)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매우 서러운 슬픔 속에서 가련하게 여기며 보살피다 즉 자기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남과 가족에게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최통무련(摧慟撫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 많이 쓸 수 있는 평범한 성어 일 수도 있지만 한글세대로 자란 필자나 후학들은 이 성어도 어렵게 다가 올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믿으며 어려운 처지에서도 배려하고 남을 보살피는 선현들의 희생정신은 인간사에 필요한 것이기에 최통무련을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217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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