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수절송척 殊切悚惕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23. 16:4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수절송척 殊切悚惕

죽일 수끊을 절두려워할 송두려워할 척

 

몹시도 절박하게 두려워서 떨다 즉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두렵고 무섭다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의 시문집 창계선생집(滄溪先生集) 권십오(卷十五)에 박삼로 태구에게 답함(答朴三老 台耇)에서 발췌하다

 

來書傾倒之意每深 래서경도지의매심

自媿庸淺 何以得此於吾人 자괴용천 하이득차어오인

殊切悚惕 然卽此 수절송척 연즉차

亦可想見嗜學取人之義 역가상견기학취인지의

未始或少替也 令人感歎 미시혹소체야 령인감탄

每竊妄念此事功程 매절망념차사공정

先覺言之已詳盡矣 선각언지이상진의

若果有意 亟宜循序致力 약과유의 극의순서치력

如所謂日行一難事 여소위일행일난사

日格一物者 方是實學 일격일물자 방시실학

而同志之間 亦必有得相告 이동지지간 역필유득상고

有疑相講 亦方有切劘之實益矣 유의상강 역방유절마지실익의

不然 其所謂向學者 徒有其名 불연 기소위향학자 도유기명

而其交際相與 亦歸於浮慕而已矣 이기교제상여 역귀어부모이이의

泳之至陋 重以酷禍大病 영지지루 중이혹화대병

則顧不足以與於斯義 칙고불족이여어사의

如吾戚長年富而志遠者 여오척장년부이지원자

恐不可不及時自警省也 공불가불급시자경성야

 

보내온 편지에서 이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뜻이 매번 깊은데

용렬하고 천박함이 스스로 부끄러운데 내가 당신에게 이런 것을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몹시도 절박하게 두렵고 떨립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또한 역시 학문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좋은 것을 취하는 뜻이

아직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음을 가히 상상해 보니 이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게 합니다

늘 한결같이 이러한 일의 공부 과정에 대해서는

선각들이 말씀하신 그것이 이미 지극히 자세하다고 몰래 망령되게 생각합니다

만약에 뜻이 있다면 빨리 의당 순서를 따라 공력을 다하고

흔히들 말하는 하루에 한 가지 어려운 일을 행하고

하루에 한 가지 물건을 궁구하는 것처럼 바야흐로 이것이 실학인 것입니다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사이에서 또한 반드시 터득한 것이 있으면 서로 말해 주고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서로 강론하여야 역시 바야흐로 절차탁마하는 실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이른바 학문을 지향한다는 것이 무리들 이름만 있고

그 교제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또한 겉치레로 흠모하는 것으로 이미 귀결될 것입니다

겨우 헤엄쳐서 이 좁은 곳에 이르렀는데 참혹한 재화와 큰 병까지 겹쳤으니

즉 돌아보니 이런 의리에 함께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우리 척장께서는 살아 갈 날이 넉넉하고 뜻이 원대하니

의심컨대 제때에 이르러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 종 6(1665) 사마시에 장원하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한 후 이조정랑 검상 부제학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숙종 20(1694)에 대사간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고 이듬 해 부제학으로 있을 때 병이 들어 약물을 하사받는 특별한 은총도 입었으며 그 뒤 참판에까지 이르렀으며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고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하였으며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고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전하며 뒤에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도 수학하여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하였으며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봉향되었고 저서로는 창계집(滄溪集)남기신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이 쓴 박삼로 태구에게 답한 편지글의 일부이다

 

용암 박태구(龍庵 朴泰耉1659~1710)선생은 본관은 밀양(密陽) 다른 이름은 박태구(朴台耉) 자는 삼로(三老) 호는 용암(龍庵) 조부는 생원 박욱(朴彧)이고 부친은 처사 박세정(朴世?)이며 처부는 김우량(金友亮)이다 여섯 살 때 자학(字學)을 공부하였고 아홉 살 때 눈()에 대해 구()를 지으라는 명에 바로 상제께서 돌아가셨는가 산천이 소복을 입었구나(上帝崩耶 山川素服)라고 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를 집행함이 예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할 때에는 방문 밖에서 안의 기후를 살피며 그때그때 알맞게 처신을 하였으며 여든 살의 나이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지나쳐 병이 들었으며 가산은 다소 넉넉하였으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 상에 들어온 부조도 따로 두었다가 나누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후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17세에 장성의 황룡리로 이사하여 외숙부 김여석(金汝錫)에게 수학하였고 약관의 나이에 이미 배움이 깊었고 갓 서른 살이 넘어 창계 임영의 문인이 되어 학문이 더욱 깊어졌으며 명재 윤증을 뵈자 윤증이 이 사람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다 상대할수록 나도 모르게 공경심이 나는구나 하였으며 여러 번 천거를 받아 1710(숙종 36)에 능참봉(齋郞)의 망단자에 올랐으나 제수되지는 못하였으며 이 해에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함평이씨와의 사이에 박준(朴濬)을 두었고 측실에게서 박렴(朴濂) 박관(朴灌)을 두었으며 저서로 용암유고(龍庵遺稿)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참조]

 

몹시도 절박하게 두려워서 떨다 즉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두렵고 무섭다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수절송척(殊切悚惕)은 주로 편지글에 편안하게 많이 쓰는 성어이지만 이와 같이 자세히 알고 보면 매우 뜻 깊은 의미를 지닌 결코 가벼운 말은 아니라는 것을 익히며 붓 들고 휘호하고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桓紀 9218(신축)211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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