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뇌락재복 磊落載腹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19. 17:08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뇌락재복 磊落載腹

돌무더기 뇌떨어질 락실을 재배 복

 

확실하게 수많은 지식을 뱃속에 넣고 있다 즉 많은 지식을 확실하게 터득하여 지니고 있다

 

이 성어는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14201488)선생의 시문집인 사가문집(四佳文集) 보유일(補遺一)에 추충정난익대 순성명량경제좌리 공신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서평군 증시문정공 한공신도비명 병서(推忠定難翼戴 純誠明亮經濟佐理 功臣 崇祿大夫 議政府左贊成 西平君 贈諡文靖公 韓公神道碑銘 並序)에서 발췌하다

 

正統辛酉 中進士科 정통신유 중진사과

入胄監 以平日所得所疑者 입주감 이평일소득소의자

質之賢師友 硏精覃思 질지현사우 연정담사

欲究底蘊 不得不止 욕구저온 부득부지

由是 所見益高 유시 소견익고

所得益精 大爲儕輩所推 소득익정 대위제배소추

丁卯 擢第 補承文院正字 정묘 탁제 보승문원정자

俄選集賢殿正字 轉至副修撰知製敎 아선집현전정자 전지부수찬지제교

常兼經筵官 再轉至副校理 상겸경연관 재전지부교리

時世宗 留意典籍 建藏書閣 시세종 류의전적 건장서각

購求中國四方諸書 充溢棟宇 구구중국사방제서 충일동우

公居常披閱 無書不讀 공거상피열 무서부독

博覽廣記 磊落載腹 박람광기 뢰락재복

人或比之世南祕書 인혹비지세남비서

平時公暇 朋僚盍簪 高談異論 평시공가 붕료합잠 고담이론

英藻遞發 公獨端坐正色 영조체발 공독단좌정색

手執一卷 目注心想 수집일권 목주심상

不左右酬答 一座嚴憚 불좌우수답 일좌엄탄

非中有所主 心不馳於外者 能然乎 비중유소주 심불치어외자 능연호

 

정통 신유 세종23(1441)에 진사과에 합격하고

주감(국자감)에 들어가 평소에 익혔던 바와 의심하였던 바를

현명한 스승과 벗에게 그것을 질정하고 생각을 한곳으로 모아 세밀하게 연구하고

밑바탕부터 깊이 궁구하려고 노력하여 그것을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보는 바가 더욱 드높아지고

얻는 바가 더욱 세밀해져 대단히 동료들에게 추앙을 받는 바가 되었다

정묘년(1447)의 대과에 발탁되어 승문원 정자에 보임되었는데

갑자기 집현전 정자로 선발되었고 자리를 옮겨 부수찬지제교에 이르렀으며

항상 임금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경연관을 겸하였으며 다시 옮겨 부교리에 이르렀다

이때에 세종이 서책에 뜻을 두어 장서각을 건립하고

중국 전 지역의 서적들을 구입하여 장서각 집 가득 넘치도록 채웠는데

공이 항상 있으면서 책을 펼쳐 열람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두루 널리 살펴보고 폭넓게 기억하여 수많은 지식을 확실하게 터득하여 머릿속에 지녔으니

사람들이 혹 세남비서(당태종 비서 우세남)에 비교하였다

평상시 공무 중에 여유가 생기면 동료들이 모여 둘러앉아 고담이론을 주고받고

훌륭한 문장을 서로 번갈아 발로하여 공은 홀로 단정하게 앉아 얼굴을 바르게 한 채

한 권의 책을 손에 잡고 눈으로 주시하고 마음으로 상상하며

좌우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지 아니하고 함께 자리한 사람들이 어려워하며 두려워하였다

가슴에 큰 믿음이 있어 마음이 밖으로 내달리지 않는 자가 아니라면 능히 그렇게 하겠는가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사가정 서거정선생이 찬한 한계희(韓繼禧)선생 신도비명 병서(神道碑銘 並序)의 일부분이다

 

문정공 한계희(文靖公 韓繼禧1423~1482)선생은 본관이 청주 자는 자순(子順) 한수(韓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고 아버지는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고 세종 23(144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가 곧 집현전정자로 뽑히고 이어 부수찬 지제교로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고 부교리에 이르렀으며 세조가 즉위한 뒤로 신임을 두터이 받아서 1455(세조 1) 우문학으로 세자에게 경학을 가르쳤으며 이듬해 좌필선 집의 1457년 예문관직제학 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으로 문한의 직을 역임한 뒤 세자우보덕(世子右輔德)을 겸하였으며 1458년 좌보덕 병조지사 참의 1460년 우승지 1461년 좌승지 공조참판 중추원부사 1462년 이조참판으로서 세자우부빈객을 겸하였으며 이듬해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1465년 이조판서 1467년 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468년 세조가 병환이 심할 때 약을 조제하는 임무를 맡았고 죽기 전날에는 세조의 지시로 대보(임금의 인장)와 곤면(임금의 정복)을 세자에게 전수하는 일을 주관하였으며 1469년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南怡)를 제거한 공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翼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서원군(西平君)에 봉해졌으며 이듬 해 성종이 즉위해서는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고 성종 2(1471)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78년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그의 집안은 조선 초기의 명문거족으로서 벼슬길에 가문의 배경이 큰 힘이 되었는데 이는 세종 때 집현전 장서각(藏書閣)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쌓은 학식이 큰 바탕이 되었으며 학식과 단정한 성품으로 주위로부터 추앙되어 존중히 여김을 받았으며 특히 서거정(徐居正)과 교분이 두터웠고 시호는 문정(文靖)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확실하게 수많은 지식을 뱃속에 넣고 있다 즉 많은 지식을 확실하게 터득하여 지니고 있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뇌락재복(磊落載腹)은 진서(晉書) 석륵재기(石勒載記)에 도량이 넓고 공명정대하다라는 뜻의 뇌뢰낙락(磊磊落落)의 사자성어에서 차용하여 쓴 성어로 보이며 좋은 말임에 틀림이 없어서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고 졸렬한 필체로 휘호하여 남긴다

 

桓紀 9218(신축)26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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