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기도경개 氣度耿介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14. 10:4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기도경개 氣度耿介

기운 기법도 도빛날 경끼일 개

 

몸에서 도는 기품이 강직하다 즉 인품이 곧고 바르다 라는 뜻으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깨끗하고 지조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1535~1623)선생의 시문집 래암선생문집(來庵先生文集) 권십이(卷十二)에 송계 신선생 행적(松溪 申先生 行蹟)에서 발췌하다

 

申處士季誠 自號石溪 신처사계성 자호석계

卒後學者尊之曰松溪先生焉 졸후학자존지왈송계선생언

姿狀端潔 氣度耿介 자상단결 기도경개

齊莊嚴毅 未嘗疾言遽色 제장엄의 미상질언거색

動靜語默 皆律以規矩 동정어묵 개률이규구

蓋自少時 卽有志於聖賢之學 不爲科擧之習 개자소시 즉유지어성현지학 불위과거지습

沈潛乎六經之文 從事乎小學之書 침잠호륙경지문 종사호소학지서

以敬爲存心之要 以誠爲持敬之本 이경위존심지요 이성위지경지본

眞積力久 道精仁熟 진적력구 도정인숙

義理之蘊奧 事物之巨細 의리지온오 사물지거세

觸處洞然 表裏通徹 촉처동연 표리통철

其論說本末 卞析是非 기론설본말 변석시비

應接酬酢 無纖芥底滯于胸中 응접수초 무섬개저체우흉중

浩然有不可禦者矣 호연유불가어자의

早從松堂朴先生學 조종송당박선생학

又與雲門金先生 南冥曺先生遊 우여운문금선생 남명조선생유

頗有師友淵源之正 파유사우연원지정

嘗曰名敎之中 自有樂地 상왈명교지중 자유악지

非膏粱而飽 非文繡而美 비고량이포 비문수이미

非鍾鼓而樂 聖賢豈欺我哉 비종고이악 성현기기아재

 

처사 신계성은 스스로 자작 호를 석계라

돌아간 뒤에 후학들이 그를 존경하며 높여서 송계선생이라 불렀다

자태가 단정 반듯하고 깨끗하였으며 인품이 곧고 바르며

장엄 엄숙하면서 굳세고 강하여 말을 급하게 하거나 황급한 기색을 띈 적이 일찍이 없었다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말 할 때나 묵묵히 있을 때나 모두 법도에 맞게 행하였다

대개 어릴 적부터 성현의 학문에 뜻이 있어 과거 공부는 하지 않고

육경의 글에 깊이 빠져 침잠하고 소학의 글을 따르는 일에 추종하였다

경으로서 마음을 다잡는 요체로 삼으며 성으로서 경을 지키는 근본으로 삼았다

진실함을 쌓는데 오래도록 힘을 쓰니 도에 정밀해지고 인에 익숙해지며

의리의 기예가 깊고 오묘한 이치와 사물의 크기와 세세한 것들에

부딪치는 것마다 명료하니 겉과 속이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였다

그 본말에 논설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분석함과

사람을 응대하는 예와 주고받는 교제함이 흉중에 막힌 것이 티끌만큼도 없고

호방함이 막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일찍이 송당 박영 선생을 따라 배우고

운문 김대유선생 남명 조식 선생 등과 어울려 놀면서

자못 스승과 붕우 관계의 근원에 한쪽으로 휘어지거나 구부러짐에 올바름이 있었다

일찍이 도리를 가르침 명교 가운데 저절로 즐거운 곳이 있어서

기름지고 찰진 기장밥이 아니라도 배부르며 문장을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고

종과 북소리가 없어도 즐거우니 성현이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1535~1623)선생이 쓴 송계 신선생 행적(松溪 申先生 行蹟)의 일부분이다

 

송계 신계성(松溪 申季誠 1499~1562)선생은 자는 자함(子諴)으로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나 임술 명종 17(1562)에 밀성(밀양의 옛 이름) 동촌 장선리에 장사지냈다 선생은 찰방 이철수의 딸에게 장가들어 21녀를 낳았는데 딸은 사인(士人) 조몽길(曺夢吉)에게 시집갔다 몽길(夢吉)은 아들 응인(應仁)을 두었고 장녀는 생원 김담수(金聃壽)에게 둘째 딸은 충순위(忠順尉) 윤탕신(尹湯臣)에게 시집갔으며 막내딸은 아직 어리다 공의 맏아들 유정(有定)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독실하게 공부하였으나 일찍 죽었는데 진사(進士) 이원(李遠)의 딸에게 장가들어 1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충복(忠復)이고 딸은 생원(生員) 송유경(宋惟敬)에게 시집갔다 둘째 아들 유안(有安)은 습독(習讀) 유기원(柳沂元)의 딸에게 장가들어 4남을 낳으니 충경(忠敬) 충근(忠謹) 충후(忠厚) 충임(忠任)이 그들이다 선생은 학문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시종일관변함이 없었으므로 아무도 겨룰 사람이 없었고 법도로 집안을 다스리고 한 마을에서는 모범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트집을 잡지 못했다 아 죽지 않은 사람은 비록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은 영영 없어지고 만다 이번에 자함이 죽었듯이 다음에는 나 건중(조식)이 죽는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문득 붓을 내던지고 탄식한다 다음과 같이 명()을 쓴다

우리 무리 가운데 인재가 많지만 그 중 신군(申君)이 으뜸이라네 마음가짐은 엄숙하고 행동거지는 꿋꿋하였네 선배들을 사숙하다가 송당(松堂) 박영(朴英)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네 비록 벼슬을 하진 않았지만 끼친 향기는 퍼져 나갔다네 갑자 명종 19(1564)에 남명 조식이 짓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계성(국역 국조인물고 1999 12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참조]

 

몸에서 도는 기품이 강직하다 즉 인품이 곧고 바르다 라는 뜻으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깨끗하고 지조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인 오늘의 성어 기도경개(氣度耿介)의 주인공 송계선생의 자료는 흔치않아 찾던 중 남명선생이 찬한 송계선생묘비명을 발견하고 반가운 나머지 일 부문을 발췌하여 소개하면서 분명 훌륭하신 선생이시고 본 받을 만한 인물이신데도 자료들이 있지만 번역되지 못하여 널리 알려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33일 삼짓날 오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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