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구극저온 究極底蘊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19. 14:14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구극저온 究極底蘊

궁구할 구다할 극밑 저쌓을 온

 

쌓여있는 밑바닥까지 모두 궁구하다 즉 온축된 핵심을 다 파악하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명재 윤증(明齋 尹拯1629~1714)선생의 시문집인 명재선생유고(明齋先生遺稿) 권삼십이(卷三十二)에 숙종37(1711)에 쓴 발문(跋隨錄 辛卯)에서 발췌하다

 

隨錄者 故處士柳君馨遠之所述也 수록자 고처사류군형원지소술야

觀於此錄 其規模之大 才識之高 可以想見矣 관어차록 기규모지대 재식지고 가이상견의

獨惜夫不得少見於時 以展其志 독석부불득소견어시 이전기지

而沈冥歿身 齎以入地也 이침명몰신 재이입지야

自古有抱負 而不肯輕以投俗人耳目 자고유포부 이불긍경이투속인이목

寧之死無聲者 往往類此 녕지사무성자 왕왕류차

後之志士 必有擊節痛恨於當世者矣 후지지사 필유격절통한어당세자의

若余則重有愧焉 旣與之並世 약여즉중유괴언 기여지병세

而平生不識其面 이평생불식기면

苟有好善之誠 雖千里之遠 구유호선지성 수천리지원

猶可以神交 況所居又壤地相比者耶 유가이신교 황소거우양지상비자야

令人不覺掩卷而歎也 령인불각엄권이탄야

然其人雖歿 其書猶存 연기인수몰 기서유존

有意於世務 或能取而行之 유의어세무 혹능취이행지

則君之著述之功 於是乎著矣 즉군지저술지공 어시호저의

豈有終至泯滅之理哉 기유종지민멸지리재

君之堂弟載遠甫 携以見示 군지당제재원보 휴이견시

使題一言於其後 사제일언어기후

余謂後世自有知者知之耳 여위후세자유지자지지이

不待人之發揮也 불대인지발휘야

且以衰病已甚 目暗神昏 차이쇠병이심 목암신혼

不能一一披閱 究極底蘊 불능일일피열 구극저온

何能有所贅論於其間 하능유소췌론어기간

虛辱盛貺 亦可慙也 허욕성황 역가참야

遂略書所感於私心者 如右而歸之云 수략서소감어사심자 여우이귀지운

 

수록은 고 처사 유군 형원이 저술한 것이다

이 수록을 살펴보면 그 규모가 크고 식견이 높다는 것을 가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독 안타까운 것은 그때에 조금이라도 이목을 얻어 그의 뜻을 펼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자취를 숨기고 일생을 보내다가 땅속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포부가 있음에도 속인의 이목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을 가벼이 하지 않고

차라리 죽어도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는 자가 왕왕 이와 비슷하다하겠다

후세에 뜻있는 선비가 반드시 그 당시 세상의 안타까움을 무릎을 치며 통탄할 수 있으니

나 같이 즉 거듭 부끄러움이 있는 것은 그와 더불어 세상을 함께 살면서도

평생 동안 그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선을 좋아하는 성심이 있었으면 비록 천리멀리 떨어져있다 해도

정신적인 교류를 있을 수 있었는데 하물며 사는 곳이 또한 가까운 지역인데 말 한들 어쩌랴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책을 덮으며 탄식하게 하누나

그러하나 그 사람은 비록 돌아갔어도 그 책은 지금도 역시 남아 있다

세상일에 뜻이 있어 혹여 거기에 취하여 능히 행한다면

즉 군의 저술이 남긴 공이 이것으로 현저하게 드러날 것이니

어찌 결국 사라질 이치에 이를 수야 있겠는가

군의 사촌 동생 재원아우가 손에 가져와 보여주면서

나로 하여금 그 뒤편에 글 한마디 써 주길 부탁하였다

나는 이르길 후세에 스스로 지각이 있는 자들이 그것을 알아줄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떨쳐 드러내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리라 여겼다

또 쇠약해지니 병이 이미 심해지고 눈은 어두워 정신이 혼미하여

하나하나 따져 살펴서 거기에 쌓여있는 밑바닥까지 모두 궁구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그 사이에 군더더기 같은 혹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

공연스레 욕되이 성대하게 책을 받아 이 또한 가히 부끄럽다

마침내 개인적으로 느낀 바를 대략 써서 위와 같이 그에게 돌려주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명재 윤증(明齋 尹拯1629~1714)선생이 반계 류형원선생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사촌동생 류재원에게서 수록의 발문을 부탁받아 쓴 글이다

반계 류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선생은 서울 출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아버지 유흠은 유몽인(柳夢寅)의 옥에 연좌되어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으며 선생이 23세 때에는 할머니의 상 27세 되던 해에는 어머니의 상을 탈상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과거에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하고 그 뒤 효종 2(1651) 30세 때에는 할아버지의 상을 당하고 2년 뒤 복상(服喪)을 마치자 그 해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멀리 전라도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은거하기 시작해 20년 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6녀를 남기고 1673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뒤 선생의 명성이 세상에 묻혀 있다가 100여년이 되어서 세상에 선생의 인물됨과 반계수록의 내용이 알려지고 높은 평가를 다시 받게 되어 당시 국왕(영조)도 관심을 가지고 반계수록 초고를 직접 읽어보고 크게 칭찬함과 동시에 인쇄해 세상에 널리 반포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쌓여있는 밑바닥까지 모두 궁구하다 즉 온축된 핵심을 다 파악하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구극저온(究極底蘊)의 발췌문을 읽고 난해한 한자를 해독하고 또 발문의 뜻을 헤아리는 구극저온도 어려운데 반계수록의 구극저온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 아닌가 생각하니 어찌 부끄러운 마음 숨길 수 있으랴 구극저온을 붓 들고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아 공유하고자 한다

 

桓紀 9218(신축)38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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