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피활흔사 披豁欣寫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22. 18:4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피활흔사 披豁欣寫

나눌 피뚫린 골 활기뻐할 흔베낄 사

 

가슴이 탁 트이고 흔쾌하다

 

이 성어는 조선후기 문신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1689)선생의 시문집인 문곡집(文谷集) 권이십팔(卷二十八)에 무오 숙종4(1678) 최선여 세경에게 보내는 편지(與崔善餘 世慶 戊午)에서 발췌하다

 

今春看又暮矣 離索之懷 益覺難聊 금춘간우모의 이색지회 익각난료

不意便中承覽惠札 披豁欣寫 불의편중승람혜찰 피활흔사

何翅接淸範而展良晤也 하시접청범이전량오야

蓬山消息 歲後漠然無聞 承示良慰 봉산소식 세후막연무문 승시량위

世事糾紛 無所不有 세사규분 무소불유

只當付之蒼蒼 而朱夫子所謂 지당부지창창 이주부자소위

窮理修身爲究竟法 者 궁리수신위구경법 자

誠今日吾儕之所當勉也 성금일오제지소당면야

此來閒寂 無他所事 차래한적 무타소사

不得不以書籍爲遣日之資 부득불이서적위견일지자

而懶習已痼 喪病悲憂 이나습이고 상병비우

又從而奪之 荏苒數年 우종이탈지 임염수년

依舊放倒 頓無一分進益之功 의구방도 돈무일분진익지공

每誦先聖 朝聞夕死 之訓 不覺懍懍 매송선성 조문석사 지훈 불각늠름

今承過情之敎 尤令人赧恧 금승과정지교 우령인난뉵

豈盛意欲發此以爲喚醒之地耶 기성의욕발차이위환성지지야

然其勉人如此 則自勉之慥慥 연기면인여차 즉자면지조조

可推而知矣 不任欽嘆 가추이지의 불임흠탄

相望落落 無由資益於麗澤 상망락락 무유자익어이택

是可悵也 千萬書何可旣 시가창야 천만서하가기

來人忽忽旋歸 草此不究 래인홀홀선귀 초차불구

惟冀倍加珍嗇 以副馳往 유기배가진색 이부치왕 홀

 

금년 봄도 또 저물어 가는 것을 보니 벗을 떠난 쓸쓸한 마음이 더욱 갑갑해짐을 느낍니다

뜻하지 않게 보내 주신 편지를 인편으로 받아 읽어 보니 가슴이 탁 트이고 흔쾌해지니

다만 맑고 높은 본보기의 분을 만나 밤새도록 정담을 나누는 기분뿐이겠습니까

봉산의 소식은 새해 설 이후 막연히 듣지 못하다가 이렇게 받아보니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세상일이 어지럽게 얽히어서 무엇이든 다 있으니

마땅히 창창한 하늘에 청해야겠지만 주부자(주희)선생이 일컫길

궁리와 수신을 마지막 추구하는 법으로 삼는다 라고 한 것은

성심으로 오늘날 우리 모두 함께 힘써야 할 바입니다

이곳에 오니 한적하고 달리 일할 바가 없어서

부득불 서적으로 시간 보내는 밑천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게으른 습관은 이미 고질병이 되었으며 상사와 병이 슬픔과 걱정으로

또 따라와서 뜻을 빼앗아버렸습니다 덧없이 세월을 몇 년간 지나다 보니

여전하게 거꾸로 내치는 듯 조금도 나아지고 보태지는 공력이 전혀 없었으니

매번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는 선성의 가르침을 외울 때 나도 모르게 두렵습니다

지금 실정에 지나친 가르침을 받아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여

다만 융성한 뜻으로 이런 것을 일깨우는 처지로 삼아 생기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하나 사람을 권하심이 이와 같으시니 스스로 착실하게 힘쓴다는 것을

가히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흠모하고 감탄하여 감당하지 못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와가며 학문과 덕을 닦는데 도움을 받을 일이 없으니

이것이 가히 슬픕니다 수많은 사연을 글로서 어찌 다 쓰겠습니까

편지 들고 온 사람이 서둘러 돌아가려 하니 이만 줄이고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오직 더욱 몸을 돌보시어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 가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후기 문신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1689)선생이 무오 숙종4(1678) 최선여 세경에게 보내는 편지(與崔善餘 世慶 戊午)이다

최세경선생에 대한 자료는 승정원 기록에 의하면 기해 현종 2(1661)년 전설별검을 제수 받은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마지막 계사 숙종 20(1694)년 찰방으로 서용된 기록뿐이라서 자세하게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문신 문곡 김수항선생은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 할아버지는 우의정 상헌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광찬이고 영의정 수흥의 아우이며 효종 8(1651)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65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후 정언 교리 등을 거쳐 이조정랑 대사간에 오르고 현종 즉위년(1659) 승지가 되고 이듬해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이 문제가 되었을 때 선생은 송시열과 함께 기년설(朞年1)을 주장해 남인의 3년 설을 누르고 3년 설을 주장한 윤선도를 탄핵하여 유배시켰으며(1차 예송) 그 뒤 이조참판 등을 거쳐 좌의정을 지내고 1674년 효종비가 죽은 뒤 일어난 제2차 예송 때는 대공설(大功說 9개월)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기년설이 채택되고 숙종 1(1675) 남인인 윤휴 허적 허목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기고 원주와 영암 등으로 쫓겨났으며 1680년 서인이 재집권하자 영의정이 되었고 1681년 현종실록 편찬총재관을 지냈으며 서인이 남인에 대한 처벌문제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릴 때 노론의 영수로서 강력한 처벌을 주도했으며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진도에 유배된 뒤 사약을 받았으며 저서로 문곡집과 송강행장이 있으며 현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영평 옥병서원 진도 봉암사 영암 녹동서원에 제향 되었고 시호는 문충공이시다 [다음백과 참조]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받으면 마치 가슴이 탁 트이고 흔쾌한 것처럼 가슴이 탁 트이고 흔쾌하다 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피활흔사(披豁欣寫)를 소개하며 아들의 혼례로 성어풀이를 며칠간 잠시 쉬어야 하지만 그러하나 피활흔사의 기분으로 휘호하고 문집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311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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