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창회태심 悵懷迨深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29. 18:18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창회태심 悵懷迨深

슬퍼할 창품을 회미칠 태깊을 심

 

서글픈 마음이 가슴속 깊이 맺히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의 시문집인 창계선생집(滄溪先生集) 권십이(卷十二)에 이동보에게 보낸 답 편지(答李同甫)에서 발췌하다

 

朝往不遇 悵懷迨深 조왕불우 창회태심

卽拜手帖 傾慰實切 즉배수첩 경위실절

所諭曲折 纔於朴丈許 略聞其槩 소유곡절 재어박장허 략문기개

蒙此書示 良荷不外 몽차서시 량하불외

此事事體至大且重 誠有不敢率爾爲者 차사사체지대차중 성유불감솔이위자

但念若諉以事體之重大 단념약위이사체지중대

而華儒祀典 全不擧論則已 이화유사전 전불거론칙이

今旣提出數先生而論請 금기제출수선생이론청

則其外當升而不升 當去而不去者 즉기외당승이불승 당거이불거자

似須一體論請 方爲正當 사수일체론청 방위정당

雖不一一枚請 只請釐正祀典 수불일일매청 지청리정사전

竢該部稟裁 사해부품재

徐論其得失當否 亦似有序 서론기득실당부 역사유서

愚見姑如此 而重大之事 不可輕着 우견고여차 이중대지사 불가경착

雖事理自正 亦須更加審處 수사리자정 역수경가심처

如何如何 여하여하

乍聞月沙集中已有此論 사문월사집중이유차론

其外先輩亦有論說 鄙人皆未之見 기외선배역유론설 비인개미지견

兄則想詳攷矣 須詳檢前言 형즉상상고의 수상검전언

深思歸宿 善爲之善爲之 심사귀숙 선위지선위지

喪慘中心昏 不一一 상참중심혼 불일일

 

아침에 들렸는데 만나지를 못하여 서글픈 마음이 가슴속 깊이 맺혔는데

방금 보내 주신 손수 쓴 편지를 받으니 실로 매우 맺혔던 서글픈 마음이 위로가 됩니다

깨우쳐 말씀하신 유시의 곡절은 비로서 박장(박세채)께 그 내용을 간략하게 듣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 알려 주신 은혜가 뜻밖이라 참말로 감사드립니다

이 일은 일전체가 지극히 크고 또 중요하니 진실로 감히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다만 생각해보니 만약 일전체가 중대하다는 핑계대면

명나라 유림의 문묘 종사하는 법 전체를 거론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지금 이미 몇몇 선생들은 논청을 제기하였습니다

즉 그 외에도 배향해야 마땅한데 하지 않은 것과 출향해야 마땅한데 하지 않은 사람을

모름지기 하나같이 전체를 논청을 해야 만이 바야흐로 바로 정당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일일이 세밀하게 논청하지 못하더라도 문묘에 종사하는 법을 바로 고칠 것을 청할 뿐

그 담당 부서에서 품재(임금에게 아뢰어 재가 받는 일)하기를 기다려

그 득실과 옳고 그름을 천천히 논하는 것이 또한 순서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견해로는 이와 같습니다만 중대한 일을 가벼이 착수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일의 이치가 스스로 발라도 또한 모름지기 다시 살펴 처리함이 마땅치 않겠습니까

어떠하겠습니까

잠깐 들으니 월사집 중에 이미 이에 대한 논의가 실려 있고

그 외의 선배들도 또한 이에 대한 논설이 있다하나 저 시골뜨기는 모두 보지를 못했습니다

형께서는 즉 상세히 상고했으리라 생각하니 모름지기 전에 말씀을 자세히 검사하여

귀결점을 깊이 생각해서 잘해야 하고 잘해야 할 것입니다

참혹한 상중이라 마음이 혼란하여 일일이 신경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이 동보 이희조에게 보낸 답 편지(答李同甫)이다

 

지촌 이희조(芝村 李喜朝 1655~1724)선생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아들이며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고 허적(許積)이 권세를 잡고 송준길(宋浚吉)을 배척하는 소를 올렸을 때 조정에서 누구도 감히 명변(明辨)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선생은 김수항(金壽恒)에게 글을 올려 논박하니 김수항도 탄복하였으며 송시열이 귀양을 간 뒤에는 양주의 지동(芝洞)으로 물러가 대귀설(大歸說)을 지었으며 숙종 6(1680) 경신환국이 있은 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으며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典設別檢)에 임명 이어서 의금부도사 공조좌랑을 지내고 진천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1694년 갑술옥사 후에 다시 기용되어 인천현감이 되고 이어 동궁서연관(東宮書筵官) 지평을 거쳐 천안군수로 나가 치적을 올렸으며 그 뒤 장악원정에 승진 해주목사가 되어서는 석담(石潭)에 있는 이이(李珥)의 유적을 찾아 요금정(搖琴亭)을 세웠으며 또한 이제묘(夷齊廟)에 찾아가 송시열의 글씨로 편액을 달고 기()를 지어 걸었으며 나라를 위하여 죽은 사람들의 사당을 세워 민심을 격려하였고 1717년 대사헌 이듬 해 이조참판 찬선 좨주를 지내고 1719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나 경종 1(1721) 신임사화로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유배당할 때 영암으로 유배되었고 철산으로 이배 도중 돌아가셨으며 영조 1(1725) 신원되어 좌찬성에 추증되고 인천의 학산서원(鶴山書院)과 평강의 산앙재영당(山仰齋影堂)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지촌집(芝村集)32권이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서글픈 마음이 가슴속 깊이 맺히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창회태심(悵懷迨深)을 소개하는 것은 이 성어가 중요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옛 어르신들의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편안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무엇이 있나 알고 싶어서 문집에 비교적 쉽게 접근이 가능한 서찰 편지글 속에 문구를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창회태심을 머릿속에 넣어두면 쓰일 곳이 분명 있을 것이라 믿어지기에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기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桓紀 9218(신축)318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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