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행조견면 幸粗遣免

백운선사 김대현 2021. 4. 30. 18:2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행조견면 幸粗遣免

다행 행거칠 조보낼 견면할 면

 

다행히 그럭저럭 지내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의 시문집인 창계선생집(滄溪先生集) 권십오(卷十五)에 조장경에게 드린(與趙長卿)글에서 발췌하다

 

卽日春陽 즉일춘양

敬惟侍奉起居增重 경유시봉기거증중

泳杜門侍傍 幸粗遣免 영두문시방 행조견면

惟是學業不進 유시학업불진

年齒漸多 甚可憂媿耳 년치점다 심가우괴이

近看馬伏波戒兄子書 근간마복파계형자서

其言老成深切 기언로성심절

施之後生有才氣而易走作者 시지후생유재기이역주작자

尤爲對病之藥石 우위대병지약석

不審高明平日看此 以爲如何 불심고명평일간차 이위여하

愚意高明若能於此虛心細意 우의고명약능어차허심세의

屈首服膺 則其於持身養德 굴수복응 즉기어지신양덕

處世接物 必有頓進 처세접물 필유돈진

不但少補而已 부단소보이이

泳之從游仲叔旣久 영지종유중숙기구

於高明愛望自切 어고명애망자절

率爾布此 幸勿咎而深察焉 솔이포차 행물구이심찰언

 

근일 따뜻한 봄볕에

삼가 생각하건대 부모님을 공경히 모시고 생활하심이 더욱 중요합니다

저 영은 집안에 틀어박혀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다행히 그럭저럭 지냅니다

오직 이 학업은 진전이 아니 되고

나이는 점점 많아져서 매우 근심스럽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근래에 마 복파가 형의 아들을 타이르는 글을 보았는데

그 말이 노숙하고 매우 간절하였습니다

재주와 기예가 있으면서 쉽게 밖으로 나아가려는 후생들에게 이 글을 보여준다면

특히 지닌 병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고명께서는 평소에 이것을 보시면서 어떻게 여겼는지요

어리석은 생각에 고명께서 만약 능히 여기에 마음을 비우고 뜻을 세세히 하여

머리를 구부려 가슴에 새겨 잊지 않으면 즉 덕을 기르고 몸을 지키면

세상에서 처신하고 타인과 교제하는데 반드시 갑자기 진전이 있을 테니

다만 작은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저 영이 중숙부를 쫓아다니며 종유한 지 이미 오래되었기에

고명께 대하여 사랑하고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간절하여

갑작스럽게 이렇게 알리오니 행여 허물을 꾸짖지 말고 깊이 살펴 주십시요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선생이 조장경에게 드린(與趙長卿)글이다

 

창계 임영선생은 본관은 나주 자는 덕함(德涵) 아버지는 군수 임일유(林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조석형(趙錫馨)의 딸이며 이단상(李端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고 현종 6(1665)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한 후 이조정랑 검상 부제학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숙종 20(1694)에 대사간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고 이듬 해 부제학으로 있을 때 병이 들어 약물을 하사받는 특별한 은총도 입었으며 그 뒤 참판에까지 이르렀으며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고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하였으며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고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전하며 뒤에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도 수학하여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하였으며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봉향되었고 저서로는 창계집(滄溪集)27권이 있다

 

조장경선생은 신재 조형기(新齋 趙亨期 1641~1699)선생으로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장경(長卿) 조원(趙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희진(趙希進)이고 아버지는 마전군수 조시형(趙時馨)이며 어머니는 심정양(沈廷揚)의 딸이고 년현종 3(166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도사(都事)를 지내다가 숙종 6(1680)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지평 장령을 거쳐 1687년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이어 승정원승지로 있다가 다시 경상도관찰사를 지내고 충청도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98년 호조참판에 승배(陞拜)되고 청사(淸使)의 육운접반사(陸運接伴使)로 발탁이 되었는데 4개월 만에 청사 접반의 일을 그르쳤다는 사간원의 탄핵이 있어 파직되었으며 평생 극담(劇談)과 종론(縱論)을 좋아하였으며 일을 맡아 처리하는 재주가 있었지만 오직 명예와 출세만을 탐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다행히 그럭저럭 지내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행조견면(幸粗遣免)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 선현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알기위해 선현들이 남긴 문집 속에 편지글이나 일상적인 기록인 일기를 읽어 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짐작 할 수 있고 그 시대에 사용했던 언어들을 어렴풋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찾던 중에 우리가 친구나 친인척간에 안부를 주고받을 때 잘 지내며 사느냐고 물으면 다행히 그럭저럭 지낸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여왔는데 그것을 한자어로 옛 선현들께서는 행조견면이라 하셨으니 조금 달리 생각하면 한자가 한문이 그리 어렵지만은 아닌 것 같아서 나름 멋을 부려 휘호하고 문집에 담아 공유하고자 한다

 

桓紀 9218(신축)319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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