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빈소지간 嚬笑之間

백운선사 김대현 2020. 6. 27. 10:45

白雲仙士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빈소지간 嚬笑之間

찡그릴 빈웃을 소갈 지사이 간

 

눈 찡그리고 웃는 사이에

눈 찡그리고 웃음을 웃고 하는 그 사이 기뻤다 슬펐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짧은 시간사이를 의미한다

 

대동야승에 조선 중기의 허균(許筠)의 형인 하곡 허봉(荷谷許篈 1551~1588)선생이 조선시대의 여러 야사를 한데 역어 저술한 해동야언(海東野言二) 성종(成宗)편에서 발췌하다

 

成廟覽而嘉之 성묘람이가지

下書其鄕 賜紙筆以奬之 하서기향 사지필이장지

榮耀鄕閭 無不驚動 영요향려 무불경동

夫才藝細技 豈足以動睿賞哉 부재예세기 기족이동예상재

然不以聖能而廢之 연불이성능이폐지

勸奬之隆 必出於誠如此 권장지륭 필출어성여차

由是文章書畫工技百術 유시문장서화공기백술

莫不賴激而精臻 막불뢰격이정진

乃知聖人鼓舞轉移之機 내지성인고무전이지기

特在於一嚬笑之間 특재어일빈소지간

 

(성묘)성종이 이를 보고 기쁘게 여겨

그 향리에 글을 써서 내리면서 지필을 나눠주고 그것을 장려하니

영화가 온 고을에 빛이 나니 놀라서 움직이지 아니하는 자가 없었다

대개 재능과 예능의 세밀한 기교가 어찌 족히 임금의 칭찬 상을 움직였을까

능란하게 잘한다 하여 그것을 폐하지 아니하고

권하고 장려하는 것이 풍성함은 반드시 이것처럼 성심에서 나왔다

이로 말미암아 문장과 서화와 공업기술 모든 기술 수많은 분야가

이 격려에 힘을 입어 정진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이에 성인의 격려와 변화함의 계기를 알고 보니

특히 눈 한 번 찡그리고 웃는 사이에 있었다

 

위의 글처럼 조선의 성종대왕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제공하고 실력 있는 자에게는 문호를 개방하고 선대 어떤 선왕들보다도 더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천자인 어진 성군 황제였음이 증명되는 글인 것 같다

필자가 갑자기 성종대왕을 황제라고 칭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성종실록 297권에 성종 대왕 행장(行狀)에서 [성화 팔년삼월황태자부음지 례관청이명일거애 왕왈(八年三月皇太子訃音至 禮官請以明日擧哀 王曰) 즉 성화8년에 황태자(皇太子)의 부음(訃音)이 이르자 예관(禮官)이 다음날 거애(擧哀)하기를 청하기를]에서 황태자 부음은 바로 경종의 부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십이년춘 선황제책황상 위황태자 사래왈(十二年春 先皇帝冊皇上 爲皇太子 賜勑曰) 성화 12년 봄에 선황제(先皇帝)가 황상(皇上)을 책봉하여 황태자로 삼고 칙서(勅書)를 내리기를] 여기서 황태자는 성종이고 성종이 황상이라고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은 황제라는 칭호를 조선조에 왕에게 썼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비석이나 글에 보면 대명조선국 유명조선국 황명조선국이라는 조선의 국호가 이와 같이 기록된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는데 이는 조선과 명은 형제 국이었기 때문이며 형제 국이라서 황제의 통칭을 같이 사용하였는데 사실 형제국가도 아닌데 현재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다만 유교의 정신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명의 통제를 받는 아우국가라고 정의가 가능한 가장 근접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선한 일을 행하는 계기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눈 한 번 찡그리고 웃는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조선이 황제 국이었다는 사실을 빈소지간 사이에서 알게 되다니 눈 한 번 찡그리고 웃는 사이에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터득하며 뾰얀 화선지위에 까만 먹물을 붓 봉에 묻혀 눈 한 번 찡그리며 웃으면서 빈소지간(嚬笑之間)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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