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치수종정 錙銖鍾鼎

백운선사 김대현 2020. 8. 20. 09:40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치수종정 錙銖鍾鼎

저울 눈 치무게단위 수쇠북 종솥 정

 

저울에 달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쇠북과 가마솥처럼 귀한 물건

종정같이 금은보석 즉 부귀를 저울에 달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여기다 즉 부귀도 하찮게 여기다 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선생의 시문집인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권십칠(卷十七)에 맹선생에게 증정한 시집의 서(贈孟先生詩卷序)에서 발췌하다

 

故賢人君子 必觀世道之汚隆 고현인군자 필관세도지오륭

以爲吾身之出處也 이위오신지출처야

苟不度時義而進退 구부도시의이진퇴

則仕者有冒祿之譏 칙사자유모록지기

處者有潔身之責 처자유결신지책

雖淸濁有間 其不合義則一也 수청탁유간 기불합의칙일야

向者知時之否 斂身而退 향자지시지부 렴신이퇴

錙銖鍾鼎 芥蹝軒冕 치수종정 개사헌면

高風遐躅 固邈乎其不可攀矣 고풍하촉 고막호기불가반의

今則明君在上 群賢滿朝 금칙명군재상 군현만조

百司庶府皆得其人 백사서부개득기인

而猶恐有懷材抱德之士 이유공유회재포덕지사

垂黃戴白之老 不求聞達 수황대백지로 불구문달

或伏於嵒穴 或隱於版築 網羅無遺 혹복어암혈 혹은어판축 망라무유

敦遣而來 渴賢之意旣甚切矣 돈견이래 갈현지의기심절의

此士君子可以出而有爲之秋也 차사군자가이출이유위지추야

 

그러므로 현인군자는 반드시 세도가 크거나 미천함을 보아서

자신을 나아가거나 머물거나 한다

구차하게 시기와 의리를 살펴보지 않고 진퇴를 하게 되면

벼슬하는 자에게는 녹봉만 쫒는다는 원망이 있으며

들어앉은 자에게는 혼자만 깨끗하면 되냐는 책망이 있으니

비록 맑고 흐림의 차이는 있으나 의리에 맞지 않기는 한가지다

이전에는 시절이 좋지 않음을 알아 몸을 추스르고 물러났으며

부귀를 가볍게 생각하고 높은 벼슬을 짚신처럼 여기며

고귀한 기풍을 멀리하고 진실로 아득히 멀리하여 더위잡을 길 없었으나

지금은 밝은 임금이 위에 계시고 이들이 조정에 가득하니

모든 관사 관부가 모두 합당한 그 사람을 얻었다

오히려 재능과 덕을 겸비한 선비와

이에 백발 머리인 노사들이 견문 넓히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혹은 깊은 산골에 숨어서 지내고 혹은 흙담집 판축에 숨는 것을 망라해서 빠짐없이

도탑게 달래어 나오게 하니 어진 뜻을 가진 이를 갈망함이 매우 간절하였다

선비군자가 나와서 일을 해볼 만한 좋은 가을 같은 때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양촌선생이 동포 맹희도(東浦 孟希道)선생의 시권의 서를 쓰신 내용인데

동포 맹희도 선생은 청백리로 이름이 유명한 맹사성(孟思誠1360~1438)선생의 부친이시다

동포선생은 고려 말기에 한성윤(漢城尹) 전교부령(典校副令) 전교령(典校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냈으며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정치가 혼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온양(溫陽)의 오봉산(五峯山) 밑에 기거하면서 조선개국 이후 조정에 나아가지 않으신 분이다

 

동포선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시묘살이를 하실 때 움집에 흰 까마귀가 둥지를 짓고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자 선생도 부모를 여읜 슬픔에 젖어 흰 까마귀 따라서 통곡을 멈추지를 아니하여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하게 나셨다는 일화를 보며 선생은 참으로 효성이 대단한 어르신이라 믿어지며 고려 왕조 때 또 조선 태조 때 선생의 효행을 기려 정려(旌閭)를 내려 받으셨으니 시대가 변했다 해도 효성은 본받아야 할 마땅한 인류 최대의 가치일 것이다

 

토기와 표주박이 주방 도구로 사용 되던 예전에는 밥을 짓는 솥과 종은 부귀한 가정이 아니고는 일반인들에게는 만져보지도 못하는 아주 귀한 금은보석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종정(鍾鼎)은 아주 귀한 금은보석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오늘의 성어 발췌문은 이 종정 즉 부귀영화를 저울에 달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치수(錙銖)같이 여기는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참 군자를 이야기하는데 요즈음처럼 물욕에 눈이 멀어 하루가 다르게 수도권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제는 군자가 없는 시대인가 하며 치수종정(錙銖鍾鼎)을 휘호해 놓고 깊은 사색에 잠기며 낭리담필에 담는다

 

 

桓紀 921772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