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호명효조 狐鳴梟噪

백운선사 김대현 2020. 9. 18. 17:3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호명효조 狐鳴梟噪

여우 호울 명올빼미 효떠들썩할 조

 

여우와 올빼미 같은 무리들이 떠들어대어 시끄럽게 울다

 

이 성어는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고 학자인 정암 민우수(貞菴 閔遇洙1694~1756)선생의 시문집 정암집(貞菴集)구권(九卷)에 노량진의 사충사 상량문 병오년(1726)(露梁四忠祠上樑文 丙午) 중부(仲父)를 대신하여 지은 상량문에서 발췌하다

 

宮門密開 궁문밀개

已分靜 冲之及戮 이분정 충지급륙

驛變馳聞 又見朋 芑之逞凶 역변치문 우견붕 기지령흉

曰國老曰門生 引喩比擬之凶悖 왈국로왈문생 인유비의지흉패

謂廢立謂簒奪 株連戕戮之酷深 위폐립위찬탈 주련장륙지혹심

鼎鑊當前 顧素心而無愧 정확당전 고소심이무괴

天日在上 控此寃而誰因 천일재상 공차원이수인

至其臨死而從容 益見所操之堅確 지기림사이종용 익견소조지견확

劉 梁處義 視今日而猶慚 류 량처의 시금일이유참

羅 吉深文 歷三載而愈毒 라 길심문 력삼재이유독

剪貳極之羽翼 將欲何爲 전이극지우익 장욕하위

戕先祖之股肱 孰不可忍 장선조지고굉 숙불가인

其事則史冊所創見 其心則路人所共知 기사칙사책소창견 기심칙로인소공지

鳳逝麟亡 天地渾殺伐之氣 봉서린망 천지혼살벌지기

狐鳴梟噪 邦國際危急之秋 호명효조 방국제위급지추

 

궁궐의 문이 몰래 열리니

정씨와 충씨는 살육에 미치게 될 것이 이미 분명하고

역참의 방자한 변란 소식이 들리니 기의 부류가 억센 흉포를 또 보게 되었다

국로의 말이니 문생의 말이니 하여 끌어와 견주어 비유한 것이 흉악함이 비교되고

폐립이라느니 찬탈이라느니 하여 뿌리까지 연결시켜 도륙한 것이 참혹하였다

끓는 가마솥 앞에서도 평소의 마음을 돌아봐도 부끄러움이 없었는데

하늘 위의 떠 있는 태양에 이 원통함을 누구를 통해 아뢰나

죽음에 임해서도 침착하게 지조가 견고하고 확실한 바를 더욱 보니

유씨와 양씨가 의리에 처한 것을 오늘날에 보면 오히려 부끄럽다

라씨와 길씨를 심문한 것은 삼년이 지났지만 독함은 더하다

보좌하는 사람들을 베고 잘라버렸으니 장차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인가

선조의 팔다리와 같은 신하를 죽이려 했으니 무엇인들 참을 수 있겠는가

그 일은 역사책에 처음 보는 바고 그 마음은 길가는 사람도 모두 아는 반데

봉황기린 같은 분들이 돌아가시니 천지는 살벌한 기운이 혼탁하고

여우와 올빼미 같은 무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나라는 더욱 위급한 때에 처했다

 

이 성어는 1725(영조1)에 노량진에 건립된 사충사(四忠祠)의 상량식 때 정암 민우수(貞菴 閔遇洙1694~1756)선생이 찬한 상량문의 내용 중에 발췌한 것인데 사충사는 조선조 1720년 경종의 즉위 후에 후사가 없자 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하교로 연잉군(延礽君 영조)이 왕세제로 책봉되고 노론에서 왕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위임하여 국왕의 허락을 받고 영의정 김창집 등이 주도하고 절목을 제정하여 올렸는데 소론의 조태구(趙泰耈) 등의 반대로 노론 측의 의도는 허사로 돌아가고 소론은 노론 측의 행동이 역()이라 규정하여 정치적 공세를 폈는데 노론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이른바 노론 4대신으로 1721년에 김창집은 거제 이이명은 남해 조태채는 진도 이건명은 청국에 연잉군의 세제 책봉 때문에 청을 방문한 후 돌아온 1722(경종 2)에 흥양현의 나로도(羅老島)에서 안치되었는데 유배 생활을 하던 김창집 등은 17223월에 목호룡(睦虎龍)의 노론이 세 가지 수단을 이용해 경종을 시해하였다고 한 고변이 있은 뒤 같은 해 4월에 이이명 5월에 김창집 8월에 이건명 10월에 조태채가 사사되었던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을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는데 영조 연간에 정치적 처분을 통해 신원된 네 분의 신위를 모시고 제향하는 사충서원(四忠書院)을 말한다[한국민족대백과에서 참조]

 

문간(文簡)공 정암 민우수(貞菴 閔遇洙1694~1756)선생은 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송준길의 외손이며 농암 김창협선생의 문인으로 1717년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가고 학업에 정진하였으며 1743(영조 19)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사헌부 지평을 역임하고 찬선(贊善)과 공조참판 좨주(祭酒)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며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잘 썼으며 해서는 양송체(兩宋體)의 정수를 얻어서 거의 핍진(逼眞)하여 명필 송준길의 외손답게 양송체를 완벽하게 구현해낸 인물로 서화가들로부터 평가받고 있으며 저서로는 여강기회록(驪江耆會錄) 정암집(貞菴集)이 있다

 

여우와 올빼미 같은 무리들이 떠들어대어 시끄럽게 울다 라는 호명효조(狐鳴梟噪)를 풀이하면서 흡사 오늘 날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 해방 후 미국의 방해와 친일앞잡이들의 농간으로 구폐청산을 못한 관계 때문에 그들이 해방 후에도 계속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다가 이제 겨우 민의로 민주주의가 정착 되려는 마당에 기존 기득권력 층들이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현실이 마치 조선조에 붕당정치에 있었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니 이 나라의 운명이 늘 이랬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쓰다듬으며 호명효조(狐鳴梟噪)를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82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