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문리국화 文摛國華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0. 7. 10:5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문리국화 文摛國華

글월 문퍼질(글을 짓다) 나라 국()

 

글 문장은 나라를 빛나게 드러내다

 

이 성어는 고려 말 조선 초기 문신인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1369~1430)선생의 시문집 춘정선생속집(春亭先生續集)권이(卷二)에 조선 문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文宗在東宮時) 지은 제문에서 발췌하다

 

惟公 유공

天資明敏 氣宇宏深 천자명민 기우굉심

學通經史 識達古今 학통경사 식달고금

文摛國華 德孚人心 문리국화 덕부인심

黼黻王猷 冠冕儒林 보불왕유 관면유림

肆我至尊 倚若蓍龜 사아지존 의약시구

待遇益隆 事必疇咨 대우익륭 사필주자

開發愚蒙 俾處貳師 개발우몽 비처이사

景仰高風 謂享期頤 경앙고풍 위향기이

天何不憗 奄秘容聲 천하불은 엄비용성

靜言思之 痛切中情 정언사지 통절중정

伻陳薄奠 以叙哀誠 팽진박전 이서애성

英靈如在 錫我思成 영령여재 석아사성

 

생각하니 공은

타고난 자질이 밝고 민첩하며 기개와 도량이 크고 깊으며

학문은 경사에 능통하고 식견은 고금을 넘나들고

문장은 나라를 빛나게 드러내고 덕은 사람들 마음을 미덥게 하고

임금을 화려하게 보좌하고 유림을 장엄하고 당당하게 만들고

우리 지존께서 거리낌 없이 시초와 거북이에 의지하며

남을 대우함이 더욱 융숭하고 일에는 반드시 자문을 구하며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고 세자를 가르치는 이사의 자리도 지켰으며

높은 풍모와 덕망을 사모하고 천수를 누릴 줄을 알았는데

하늘이 억지로 두지를 않아 갑자기 모습과 음성을 감춰버렸으니

조용히 그를 생각하며 말하려니 애통함이 심중에 절절하다

박한 제물을 진설하여 드리고 슬픔과 정성을 다하나니

영령이여 계시다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셔서 흠향하소서

 

이 성어는 조선 문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 문숙(文肅)공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1369~1430)선생의 기일에 쓴 제문에서 발췌를 하였다

 

춘정선생은 본관은 밀양이고 이색(李穡) 권근(權近)의 문인이며 고려 우왕 (1382)8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는 생원시에도 합격 1385년 문과에 급제 전교주부 비순위정용랑장 겸 진덕박사를 지냈으며 1392년 조선 건국과 더불어 천우위중령중랑장 겸 전의감승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이후 의학교수관을 거쳐 태조 4년에 교서감승에 지제교를 겸임하고 성균관학정 사제감소감 겸 예문관응교와 직제학을 역임하고 태종 7년 문과 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에 오르고 예조우참의가 되고 이듬해 세자좌보덕이 되고 예문관제학 춘추관동지사 겸 내섬시판사 경연동지사 세자우부빈객 수문전제학 좌부빈객 예문관대제학 겸 성균관대사성 우빈객 예조판서 경연지사 춘추관지사 의정부참찬 등 많은 관직을 역임하고 특히 1419년에는 대부분의 관료들이 반대한 왜구 토벌을 강력히 주장 이종무(李從茂)를 앞세운 기해동정(己亥東征)을 성공케 하는 데 공헌하고 세종2(1420)년 집현전이 설치된 뒤 그 대제학이 되고 우군도총제부판사가 되었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거의 20년 간 대제학을 맡아 외교 문서를 작성하고 과거 시관으로 지극히 공정을 기해 고려 말의 폐단을 개혁하는데 앞장섰으나 대제학으로서 귀신과 부처를 섬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저서로 화산별곡(華山別曲) 태행태상왕시책문(太行太上王諡冊文)을 지어 조선 건국을 찬양하였으며 정부상규설(政府相規說)등 춘정집(春亭集) 35책이 전하며 거창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셨다[한국민족대백과 참조]

 

조선조 문종은 성품이 인자하고 명철했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음악과 여색은 즐기지 않았으며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세자 시절 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귤을 담아 보낸 소반에 귤시(橘詩)를 지어 적은 일이 있었는데 이를 본 집현전 학사들이 그 뛰어난 문장과 글씨에 반해 서로 베껴 적으려고 소반을 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문종은 29년 동안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준비된 왕으로 세종 27(1445)년부터 문종은 건강이 좋지 않은 세종을 대신해 섭정을 하는데 세종은 세종25(1443)년 왕세자가 섭정하는 제도를 만들고 이에 따라 세종 27년 부터 본격적으로 모든 정무를 세자가 맡아보게 되었으며1450(세종 32) 2월 세종이 죽자 문종은 마침내 왕위에 올랐으며 문종은 언로를 넓히기 위해 문무 4품 이상의 관원들에게만 허락되던 윤대(輪對 임금을 만나 직무에 대해 아뢰던 일)6품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새로 편찬하고 신무기개발 등 많은 일을 추진하다가 몸이 허약했던 문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 점차 병색이 짙어져 23개월 향년 39세에 죽고 말았다

 

글 문장은 나라를 빛나게 드러내다 라는 오늘의 성어 문리국화(文摛國華)를 선정하고 소개하면서 글 문장의 중요함은 누구나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제라 서술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춘정선생과 문종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 이종무를 앞세운 기해동정을 성공은 했지만 잘 마무리를 하지 못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문리국화(文摛國華)를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를 한다

 

 

桓紀 9217821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